고창 흥덕당간지주에서 만난 고요한 들판과 시간의 흔적

늦은 오후,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고창 흥덕면으로 향했습니다. 시골길을 따라 천천히 달리다 보니 논 사이로 솟은 돌기둥 두 개가 멀리서도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곳이 바로 ‘흥덕당간지주’였습니다. 절은 사라졌지만, 그 터에 남은 이 두 개의 석주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람결에 풀잎이 스치고, 돌의 표면에는 세월이 새겨놓은 미세한 금이 얽혀 있었습니다. 빗물 자국이 남은 흔적마다 시간의 깊이가 느껴졌습니다. 사람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라 주변은 고요했고, 들판 위에 서 있는 돌기둥의 존재감이 더욱 뚜렷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역사가 그대로 숨 쉬는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1. 흥덕면까지의 길과 도착 경로

 

고창읍 중심에서 차량으로 약 15분이면 흥덕면에 닿습니다. 내비게이션에 ‘흥덕당간지주’를 입력하면 흥덕중학교 근처에서 좁은 마을길로 진입하라는 안내가 나옵니다. 마을회관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논 사이에 회색빛 돌기둥 두 개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도로 옆에 소형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3대 정도는 세울 수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고창버스터미널에서 흥덕 방면 버스를 타고 ‘흥덕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하차 후 도보로 7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합니다. 표지판이 작고 주변이 평지라 가까이 가야만 눈에 띄므로, 낮 시간대 방문이 좋습니다. 논두렁을 건너는 길이 좁기 때문에 비가 온 다음 날엔 미끄러움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길 끝에서 비로소 두 개의 석주가 마주 서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2. 유적지의 공간감과 주변 분위기

 

흥덕당간지주는 평지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주변 풍경이 탁 트여 있습니다. 높이 약 4미터의 석주 두 개가 1미터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으며, 그 사이에는 한때 당간이 세워졌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석주의 표면은 거칠지만 균형이 정확하게 맞춰져 있고, 각진 모서리와 세로 홈이 섬세하게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돌 속에 섞인 흑색 광물이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발 아래에는 낮은 돌기단이 있어 예전 절터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변은 논밭과 들꽃이 어우러져 한적했고, 바람이 불 때마다 기둥 사이로 바람이 흐르는 소리가 맑게 들렸습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데도 그 자체로 단아한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석주가 품은 고요함이 공간 전체를 감싸는 듯했습니다.

 

 

3. 흥덕당간지주가 지닌 역사적 가치

 

이 지주는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절 입구에 당간을 세워 불교의 깃발을 걸던 구조물로, 지금은 지주만 남아 있습니다. 전북 지역의 당간지주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뛰어난 편이며, 돌의 균열이나 침식이 크지 않아 형태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둥의 상단에는 당간을 고정하던 홈이 아직 남아 있고, 마주 선 두 돌의 간격이 균일해 석공의 정교함이 드러납니다. 다른 지역의 당간지주보다 크기가 크고 비례가 안정적이라 건축미가 돋보입니다. 이곳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유도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지역 불교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찰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불교적 정신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돌 하나하나가 당시의 공기를 품고 있는 듯했습니다.

 

 

4. 현장에서 느낀 편의 시설과 배려

 

유적지 옆에는 간이 안내판과 나무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벤치는 마을 주민들이 잠시 쉬어 가는 자리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별도의 매점이나 화장실은 없지만, 마을 입구 쪽 ‘흥덕면사무소’에 공중화장실이 있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안내판에는 유래와 연대, 구조 설명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 관람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을에는 논이 누렇게 익어 배경이 더욱 아름답고, 봄에는 주변에 유채꽃이 피어 사진 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있습니다. 입구에는 작은 돌계단이 있어 발판이 편했으며, 구역이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관광지보다는 마을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분위기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불필요한 인위적 시설이 없어 유적 본연의 느낌이 온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5. 주변에서 함께 둘러볼 만한 곳

 

흥덕당간지주를 보고 나면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고창읍성(모양성)’을 추천드립니다. 성벽 위를 걸으며 고창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또한, 인근의 ‘고창 고인돌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지는 지역의 문화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코스입니다. 흥덕면 중심에서 남쪽으로 5분만 이동하면 ‘흥덕시장’이 있는데, 주말이면 장이 열려 지역 특산물과 전통 간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점심 식사는 ‘흥덕국밥집’에서 해결했습니다. 맑은 국물에 고기가 부드럽게 익어 여행 중 든든한 한 끼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서쪽으로 이동해 ‘고창 선운산도립공원’까지 들러보는 것도 좋습니다. 하루 일정으로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동선이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팁

 

이곳은 들판 한가운데 위치해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여름철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챙기고, 겨울에는 바람이 강하므로 외투를 단단히 여미는 것이 좋습니다. 비가 온 다음 날엔 진입로가 질퍽해 장화를 신는 것이 안전합니다. 관람 시간은 자유롭지만, 오후 해질 무렵이면 역광이 강해 사진이 어둡게 나오니 오전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주차공간이 협소해 차량이 많을 경우 인근 마을길에 잠시 정차하는 편이 낫습니다. 유적 주변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기둥에 손을 대거나 기대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삼각대나 드론 촬영은 허가가 필요하므로 사전 문의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조용히 머물며 주변 풍경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이곳을 가장 아름답게 감상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흥덕당간지주는 단순히 옛 절의 흔적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품은 상징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무 장식도 없는 두 개의 돌기둥이지만, 그 속에는 수백 년을 견딘 의지와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변의 고요한 들판과 어울려 한 폭의 풍경처럼 다가왔습니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래된 것의 단단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돌 사이로 지나가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잠시 마음이 멈추는 듯했습니다. 다음에는 봄 햇살이 부드럽게 비칠 때 다시 찾아, 다른 계절의 흥덕당간지주를 보고 싶습니다. 조용히 서 있는 돌기둥 앞에서, 시간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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